NekoNeko’s blog

3월 20, 2007

손학규, 고건, 정주영, 그리고 정치판의 룰

밑에 신청: 시사 — NekoNeko @ 5:38 오전

1. scene #1: 고건씨의 대선 불출마 선언에서 인용.

지난 일년 가까이 나름대로 상생의 정치를 찾아 진력해 왔습니다.그러나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저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함을 통감합니다.

여기에 대한 모 신문의 해설 기사 중 인용.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도 한몫을 했다. 자신이 제안한 중도통합신당 추진 원탁회의가 구성되지도 못하는 점에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고건 지지’를 공식화하겠다던 의원들의 모임도 지난해 말 한 차례 연기됐다가 결국 무산됐다. 고건 캠프의 한 참모는 “고 전 총리가 지난해 11월 창당을 선언한 직후 여당 의원 5명과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고 총리가 그 자리에서 ‘이제 공식적으로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의원들은 그러나 ‘아직 탈당 못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지난해 말 참모들에게 “국회의원들은 참 …”이라고 혀를 찼다고 한다.

2. scene #2: 이번에는 오래전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대선 출마 이유를 잠깐 살펴보자.

“내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었지만 정치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업을 하다 보니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게 귀찮아서 기업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나서봤던 겁니다.”

3. scene #3: 시계추를 뒤로 돌려 이번에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사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멘트 한마디.

해일처럼 밀려온 여론 앞에 책임의 소재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를 떠내려 보내는 것은 인사권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정치에 몸담지 않고 사회를 바꾸어 나가기란 결국 이토록 여러운 것인가? 고건씨가 대선 출마를 포기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신당에 참가할 기존 정치인들을 규합하지 못한 것이었고, 기업가인 정주영씨가 대선에 출마하게 된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기업 경영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는 기존 정치세력의 강력한 파워 때문이었다. 이헌재씨라면 그래도 재정경제부와 금융권에서는 막강한 인맥과 파워로 소문난 소위 이헌재 사단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헌재씨가 여론에 올라탄 정치인들의 입김에 사퇴를 당한 과정은 사단 소리를 들을 만한 인맥의 소유자라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었다.

손학규씨가 한나라당 탈퇴를 선언했다. 고건씨의 사퇴 성명과 손학규씨의 탈당 선언을 비교해보면 자신의 지지세력을 규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존 정치판의 벽을 실감하고 여기에 상당한 좌절감을 느낀 부분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한편으로, 정주영씨의 대선 출마 이유에서는 내노라 하는 재벌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소위 국회의원들, 정치인들의 파워의 규모를 엿볼 수 있고 이헌재씨의 사퇴를 보면 행정부의 관료 집단들이 아무리 파워가 있다고 한들 역시 정치인들의 그것에 비할바가 못된다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정치권을 휘어잡지 않고서는, 대통령이 되지 않고서는 사회를 개선해 나갈 방법이 없다. 정주영씨 외에도 정치인이 아니었던 많은 사람들이 대권에 도전했다. 조순씨는 경제학자였고, 정몽준씨는 현대 계열사의 경영자였으며, 그리고 이회창씨는 원래 법조계의 인물이 아니었던가? 만약이라는 가정이지만, 조순씨는 대통령보다는 경제부총리나 재경부 장관 직책에서 한국 사회에 더 나은 공헌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정몽준씨는 역시 현대 그룹에서 기업 경영으로, 이회창씨는 법조계 관료로서 명성을 드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누구도 타의든 자의든 간에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길을 가지 못했으며 이들 외에 이미 수많은 다른 관료와 경영인들이 정치인들의 세력 하에 휘둘리는 선례를 남겨야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든 정치판에서도 이들 중 내가 지면 네가 이기는 정치 권력판, 옛말로 치면 이 양반들 권세놀음에 뛰어들어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이회창씨가 정치인으로의 성공적인 변신에 가장 근접했을 뿐 다른 어떤 후보들도 기존 정치판의 세력을 제것으로 흡수하지 못했다.

즉, 손학규씨의 한나라당 탈퇴가 얄팍한 지지율 계산에서 비롯되었든, 혹은 그의 말대로 “한국 정치의 낡은 틀을 깨뜨리기” 위해 탈당을 했든 상관없이 결국 한국의 정치판에서 그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지세력의 규합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손학규씨는 어떤 정치인들을 그의 지지세력으로 모을 것인가?

여기에 한국 정치판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과 최악의 여론을 감안해 볼 때 이미 여당인 열린 우리당은 해체되는 것이 마땅하며, 정치적 권력은 배타적으로 공유될 수 없으며 권력을 빼앗긴다는 것은 정치적 사망을 의미한다는 권력의 속성을 고려해 본다면 열린우리당의 정치인들은 당을 깨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을 해체하고 낙향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의원들 중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를 벗어던진 의원들이 누가 있는가? 결국 “헤쳐모여당”의 수순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손학규씨가 제3의 신당을 만든다고 해도 결국은 도로 우리당의 간판이 걸릴 가능성이 높으며 그런 측면에서 손학규씨의 탈당을 환영한다는 여당측의 논평은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분노를 자아내기에 족하다. 한편으로, 한나라당의 손학규 지지세력들이 탈당을 감행한다고 생각해보자. 손학규씨는 그 동안 누누히 반복해왔던 한나라당을 떠나지 않겠다는 그의 발언을 완전히 뒤집으며 스스로의 신뢰도를 추락시켰는데 이런 사람을 따라나서는 한나라당의 의원들의 진정성을 과연 유권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차라리 고건씨의 대선출마 포기 선언을 되돌아보자. 고건씨는 그래도 자신의 자리를 깨끗이 양보하고 일어선 까닭에 다른 대선 후보가 고건씨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실히 오픈해 놓았다. 조금 더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주역이었던 최병렬, 조순형, 홍사덕 의원들을 보자. 수구꼴통 소리를 듣는 그들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정치판에서 축출당한 뒤 깨끗하게 물러나 있지 슬금슬금 정치판에 컴백하려는 시도는 일절 하지 않았고 그들의 퇴장은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조순형씨는 컴백을 하지 않았냐고? 조순형씨는 재보선에서 철저히 자신의 탄핵 시도는 지금도 올바른 일이라고 주장하며 유권자들에게 이 부분에 대한 심판을 요구했고 이에 찬성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손으로 당당히 선출되었다. 하지만 지금 여권의 국회의원들은 어떠한가?

그 결과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부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강금실이 치어걸이 되든, 정운찬이 꽃가마를 타든, 세종대왕께서 재림하시든 이들은 어떻게하든 새로운 스타에게 엉겨 붙으려 할 것이고, 세력을 모으지 않고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는 한국 정치판의 속성상 새로운 유력 대선 주자는 이들의 간판 바꾸어달기를 용인해 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냐는 옛말이 있지만 구더기가 이렇게 많아서야 그나마 있던 장도 남아나겠는가? 그리고 그 배후에는 한번 잡은 권력은 어떻게든 놓지 않겠다는 현 정치인, 특히 여당 출신 정치인들의 만용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까닭에 손학규씨의 한나라당 탈당은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한국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보통 씁슬한 것이 아니다. 고건씨의 좌절이 암시해 주듯이 기존 세력의 벽은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높기만 하고, 정치적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으니 (대통령도 퇴임후 정계에서 활동하겠다는 세상이 아닌가) 이들 세력을 뽑아내 축출할 방법도 묘연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다 나은 대한민국의 건설을 위해서는 그 역할에 합당한 대통령 선출이 거의 필수인데 이를 위한 신진 정치 세력의 규합은 현재까지는 성공 사례가 없다.

약간의 논외이지만 아마도 정운찬씨의 고민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정운찬씨가 과연 거시 경제학자로서 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이끌 의향이 있다면, 그 역시 한국 사회의 특성상 대통령이 되지 않고서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가 불가능 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헌재씨나 다른 경제 수장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 부총리나 한은 총재는 여전히 정치권의 입김 한마디에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 아니겠는가. 이길 수 있는 판이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을 보면 모든 것을 정치로 해결해야 하며, 그 정점에 대통령이 위치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을 다시금 암시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그래서 손학규씨의 탈당은 개인적으로 유권자의 입장에서 환영할 수 없다. 그의 탈당은 열린우리당의 철새들의 번식을 위한 새로운 판을 만들어 주었으며 한나라당을 소위 수구꼴통당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아무리 철새들이 많은 열린우리당이라도 그 중에는 건져야할 인재들이 몇몇 있기 마련이며 아무리 수구꼴통이 많은 한나라당이라도 차기 정부에서 활약할수 있는 인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박근혜씨가 손학규씨의 탈당 선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그 동안 굉장히 많이 변했는데 당내 사정을 잘 모르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내 민주화가 이뤄졌고, 부패, 비리와 고리를 끊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했으며 변한 게 많다”라는 반박을 한 기사를 보고 있으면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분명, 한나라당은 여론의 눈에는 여전히 수구꼴통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예전에 비하면 많은 변화를 이루어 온 것은 사실이다

결국, 손학규의 탈당이 아무리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세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기존 정치꾼들 — 여야를 모두 포함하는 —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 아니겠는가. 손학규는 뛰어넘지 못하는 기존 정치판의 벽을 뼈져리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손학규는 그의 탈당이 그가 절망했던 기존 정치판의 벽을 더욱 공고히 하리라는 점을 과연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탈당의 동기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그의 탈당은 유권자의 입장에서 결코 환영할 수 없다. 장사도 이윤 추구라는 기본 원칙이 있듯이 정치판도 권력에 대한 기본 룰이 지켜져야 한다. 지금처럼 권력 유지에만 힘쓰는 정치인들이 대선 승리라는 미명하에 계속 살아남아서는 안된다. 공무원들의 철밥통도 깨자는 세상에 과연 정치인들은 여전히 권세를 보장받아도 되는 것인지? 그럼에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여전히 대통령이 바뀌고 정치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회를 개혁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오호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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