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결정을 내린 정운찬씨는 담담한 것 같은데 정운찬씨 주변이 야단을 떠는 모습이 재미있다. 금속 조각의 강도 특성을 알아보려면 강한 충격을 주고 그 반응으로 생성되는 충격파를 해석해야 하는 법. 이 기회에 정운찬에 관심을 기울였던 “정치 세력”들을 잠깐 살펴보자.
이들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운찬씨를 붙잡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세력들이다. 일단 참고용 신문 기사 하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4/30/2007043000805.html
결국 정운찬씨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깊다는 김종인 의원의 다음 얘기가 상황을잘 요약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는 “(정 전 총장에게) 권력의지가 없었다고는 할 순 없지만 우리당에는 꽃가마 태워줘도 안간다고 했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은 죄다 우리당 사람들 뿐이니 함께 할 수 있었겠느냐”며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생각도 강했다”고도 했다.
즉, 정운찬씨가 현실적으로 모을 수 있는 정치세력은 이미 해체당한 열린우리당 출신 의원들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나라당 쪽에서의 반응은 아직 지켜봐야 하겠지만 조선이나 동아일보와 같은 보수신문들의 반응을 보면 정운찬씨의 불출마를 유력한 경쟁자의 조기 탈락으로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는 듯 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정운찬 지원가능 세력에서 일단 제외. 게다가, 남아있는 민주당이나 국중당은 여전히 지역정서에 기반하고 있는 바 정치세력으로서의 연대 자체가 어려웠을테니 결국 정운찬씨의 구체적인 고민은 열린우리당 출신 의원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여부에 대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된다.
달리 말해, 정운찬씨가 출마를 한다면 현실적인 방안은 예전의 이회창씨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가는 것 이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회창씨는 비록 진보를 바라는 국민들의 바램을 거부했지만 그 당시 신한국당이 건재했고 김영삼씨의 지원하에 당의 지배력을 빠른 시간내에 확보할 수 있었지만 정운찬씨의 사정은 다르다. 한편으로, 이회창씨는 그렇게 정치세력 확보에 성공한 몇 안되는 외부출신 인사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결국은 그도 흠집내기식 권세싸움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본다면 정운찬씨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결론의 도출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종합해보면 예전 이회창씨가 신한국당에 들어가 대권 도전을 하는 것보다 지금 정운찬씨가 열린우리당 잔여세력들을 이끌고 신당을 만들어 대권 도전을 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정운찬씨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정책과 원칙 추진에 있을 터인데 이들 잔여세력들이 경제정책에 대한 개념도 정치에 대한 원칙도 없음은 이미 열린우리당 출범 때부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결국, 문제는 이 “꽃가마”를 준비해 놓고 꽃가마에 오를 이만 찾아다니고 있는 이들 열린우리당 출신 잔여세력들인 셈이다. 그들에게는 정운찬씨의 불출마 선언이 크나큰 상심으로 이어지리라.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할 때 이들은 이제는 좀 정치판에서 퇴장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정치인은 권력을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지상 과제이지만 일단 권좌에서 밀려난 정치인들은 퇴장해야 하는 것 역시 정치의 속성이다. 이들이 밀려나지 않고 있으니 도데체 소위 참신한 인물이 있어도 정치세력화가 진행될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아무리 참신한 인물, 원대한 비전을 세워놓아도 이들이 달라붙으면 금방 퇴색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 아닌가 싶다.
지금 박근혜와 이명박씨의 지리한 다툼이 꼴사납기는 하지만 한나라당이 현재의 박근혜와 이명박, 그리고 예전의 손학규라는 3강 구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원천중의 하나는 오래전 노대통령 탄핵 주도 세력이었던 최병렬씨와 홍사덕씨의 퇴장이었다. 진정 열린우리당 출신들이 재집권을 원한다면, 적어도 그들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고 싶다면 참신한 인물을 퇴색시키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